오늘은 토요일, 레이오프된지 2주 절반이 되는 날. 어제 망친 인터뷰의 여파로 오늘 아침은 그 어느 날보다 무겁고 힘든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좋아하는 커피샵에 애써 다녀오고 나니 잠시 힘이 나서 기록할 마음으로 앉았다. 모든 것이 빠르게 움직이는 테크회사에 다니며, 어떤 doc은 모멘텀을 놓치면 영원히 쓸 수 없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흘러가는 시간과 하루하루 바뀌는 마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써본다.

레이오프가 된 당일에는 이메일을 받자마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고, 놀란 남편을 뒤로하고 화장실에 가는데 걸어가다 몸에서 힘이 풀리는걸 느꼈다.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충격을 받으면 실신하는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머리로는 정작 아무런 느낌이 없었는데 갑자기 속이 너무 메스껍고 어지럽고, 걸어가다 주저앉을 것 같았다. 손을 씻고 나와 내방 컴퓨터를 열었는데 아직 Slack 포함 모든게 접속 가능했다. 그 전날까지 Slack 레이오프 채널을 열심히 읽었었는데 이제는 거기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글들을 읽을 필요도, 여유도 없었다. 언제 로그오프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 패닉상태에 아무런 경황이 없었다. 뭐부터 챙겨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뭘 챙길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포트폴리오 같은걸 다운받고 싶지만 그러다 회사 규칙을 위반하는거 아닌가 싶어서 결국 아무 문서도 챙기지 못했다. 정신을 가까스로 부지하고 가장 가까운 코워커에게 (떠오르는 순서대로) 짧게 메세지를 남겼다. 그동안 같이 일해서 고마웠다. 다시 만나길 바란다. 내 매니저 E에게는 니가 내 매니저였던 것이 너무나 운이 좋았다라고 썼다. 그 메세지를 쓰는 찰나동안에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별 경력이 없는 나를 뽑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너무 좋은 매니저였던 것에 대한 차오르는 감사함과, 또 한편으로는 이 레이오프의 결정이 사실은 매니저의 판단은 아니었을까 하는 한 줄기의 의심까지. 하지만 불과 지난주의 1:1에서 E가 내게 했던 말들을 생각해보며, 그 말들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믿는 마음으로 인사를 남겼다. 컴퓨터 액세스가 언제 끊길지 몰라서 너무나 당황이 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좀 생각해둘걸 싶었다. Beth에게서 온 이메일에 여러가지 인스트럭션이 써있는데 그것도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말 당황과 패닉 그자체.. 그러다가 곧 회사 랩탑에서 로그아웃이 되었다. 같은 팀 한국 동료가 카톡으로 놀라서 메세지를 보내와서 몇마디를 함께 주고받았다.

오전 내내 충격에 싸여 앉아있는데 느껴지는 주된 감정은 수치심이었다. 퍼포먼스와 무관한 결정이라고 추측은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내’가 당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감정이었다. 그 수치감은 피할 길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레이오프 됐는지 궁금했는데 더이상 알 길이 없었고 알아보러 나설 마음도 없었다. 그렇게 앉아있는데 아침 10시쯤 링크드인에서 그룹챗이 왔다. 우리팀 J가 채팅방을 만들었는데, 자기 레이오프 되었다면서 우리팀 피해 규모(?)가 어떤지 알아보고 싶다는 거였다. 그 밑에 줄줄이 나도 impacted 됐다는 답글이 달렸다. 알고보니 우리팀 거의 전체가 다 레이오프 된거였다. 그 채팅방에서 나말고 이렇게 사상자가 많다는 걸 아는 건 당장 위로가 되면서도 무서웠다. 이 많은 (똑똑한) 사람들과 함께 잡을 찾아야 한다니… 한편으론 그 레이오프 명단을 볼때 이게 퍼포먼스 베이스가 아니라는 건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이 명백해져서 거기서 마음의 짐은 한숨 덜었다. 우리팀에서 가장 에이스라고 생각했던, 승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이 다 거기 있었으므로.. 아무리 봐도 어떤 패턴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시애틀에 있는 사람들이 그나마 영향을 덜 받긴 했는데 그걸로 다 설명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프로젝트 영향도 좀 있는 것 같긴 했지만 역시 그것도 예외가 없진 않고. 나중에 매니저한테 들었는데 외부업체에 레이오프 디시전을 외주를 줬고 거기엔 프로젝트 정보 같은건 들어가지 않았단다. 그치만 전체적으로 종합해볼때 샐러리 레벨, 프로젝트, 로케이션 정도가 다양하게 영향을 미친 것 같다는게 사람들의 결론이었다.

레이오프 당일 오후 1시, 우리팀 사람들끼리 모여서 버추얼 챗을 했다. 익숙한 얼굴들을 보니 위안이 됐고 어딘가 말할 공간이 있다는게 너무 다행이었다. 다들 충격에 싸여있지만 그럭저럭 괜찮아보였다. 나도 그렇게 보였겠지. 매니저였던 A가 너희랑 일하는게 참 좋았고 너희가 내 잡 (=people managing)을 너무 쉽게 만들어줬다는 말을 할때 나도 모르게 울기 시작했다. 정말 이런 팀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내가 잃어버린건 단순히 직장과 페이첵이 아니라 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팀워크, 함께 했던 시간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And what lucky person was I to be with such amazing group of people?

우리팀 에이스 J가 그와중에 디스코드 서버를 만들었다. 좀더 안정적인 곳에서 채팅을 이어가야 하지 않냐면서. 그는 이미 레이오프가 된지 몇시간만에 디스코드에 우리팀 서버를 만들었고, 거기다 위트 만점의 타이틀을 붙였고, Peccy 이미지를 다운받아 시무룩한 표정으로 약간 바꿔서 로고까지 만들었다 (예전에 포토샵을 배웠다고 한다). 우리팀 인프라랑 AWS 어카운트 관련한 모든걸 맡아서 했던 J가 레이오프 되고 나서도 사후세계에서 우리를 위한 인프라를 만들고 있는게 너무나 웃겼다. 게다가 레이오프된 사람들을 위한 채널을 따로 만들고 모든 롤을 위한 채널을 다 따로 만들고 공지까지 만드는 등.. 그 세심함과 실행력, composure를 나는 그저 감탄하며 구경했다.

레이오프 되고 1~5 일 정도는 너무나 정신이 없었다. 슬랙으로 통일되어있던 나의 일상 연락망은 링뜨인, 디스코드, 카톡, 회사 웹 아웃룩으로 정신없이 흩어졌다. 매니저랑은 개인 이메일로 연락이 왔고,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한테 리퍼럴 부탁하는 연락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얼얼한 기분으로 갑자기 MS 인터뷰가 잡혀서 리크루터 콜을 하고 금요일에는 스크리닝 인터뷰도 봤다. 다행히 통과가 돼서 다소 희망적인 기분으로 주말을 보냈다. 근데 레이오프되고 나서 정말 신체적으로 너무 피곤이 몰려왔다. 끝없이 졸립고 뒤통수가 무겁고.. 그와중에 레쥬메 고치고 오랫동안 안했던 잡인터뷰까지 준비하는게 너무 트라우마를 가중시키는 느낌이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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