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중순 월요일 아침부터 병원에 전화를 돌리며 하루를 시작. 다음달 시험관 사이클이 시작되기 전에 HSG 검사를 받으려면 당장 이번주에 예약을 해야만 하기에 마음을 좀 졸였다. (HSG는 생리 6~11일차 사이에만 예약을 잡아줌). 출근길 기차에서 수화기 너머로 date of birth와 address를 불러주며 누가 듣는 이 없나 괜히 신경이 쓰였다. 전화영어도 이제는 준-달인이 돼가는 느낌…

다행히도 클리닉에서 리퍼해준 imaging center에서 당일 취소된 자리가 하나 있다고 해서 예약을 잡았다. 근데 회사에 도착해서 일을 하는데 문득 보험 커버리지를 확인해봐야한다는게 기억나서 (지난번 endometrial biopsy의 악몽..) Aetna에 연락을 했더니, 커버리지를 알려면 의사가 내 medical history를 적어서 이 검사가 필요하다는 걸 증명하는 authorization을 보험사에 보내야 한다는 것임. 게다가 그 과정이 1-2주가 걸린다고?! (게다가 내 의사는 7월초까지 휴가감). 그래서 일단 클리닉에 전화를 했더니 스태프가 말하길 자기네는 한번도 HSG 할때 preauthorization을 보내야 했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진단목적의 검사이기 때문에 authorization이 필요하지 않다고. 근데 보험사에서 그렇게 말한다면 아마도 imaging center 자체에서 그동안 preauthorization을 보냈을지도 모르겠다며 그쪽에 전화해서 부탁해보라고 했다. (근데 이건 말이 안되는게.. Aetna에서 요구한 건 내 medical history 인데 imaging center에서 그런걸 알리가 없음). 아무튼 이렇게 back and forth 하는 와중에 우선 HSG 당일 예약은 취소해놓고 보험사에 다시 연락을 했다. 이번에는 클리닉에서 받은 procedure code랑 imaging center NPI 번호 받은걸 주면서, 클리닉에서는 한번도 authorization 보낸적이 없다던데 어떻게 된거냐, 커버리지 다시 한번 확인해달라고 했더니 직원이 자기가 아까 잘못 답했다며 이거는 그냥 다 커버되는게 맞다고 함 :/ outpatient surgery copay 300불 예상된다고. 아놔ㅜㅜ! 그래서 다시 imaging center에 부랴부랴 전화해서 아까 취소한거 다시 예약해달라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다음날 빈자리로 예약을 잡음. (아 힘들다.. 이거 전화돌리는데만 몇시간이 감 -_-)

그리고 그다음날 돼서 HSG를 받으러 갔다. 갑자기 날씨가 100도에 육박하는 올해 들어 제일 더운 날이었다. 오랫만에 가본 어퍼이스트에는 카트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게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보행을 보조하는 무언가를 끌고 있는 나이든 여자들, 아니면 카트를 끌고 장보러 가는 사람들. 그러게 여긴 그런데였지. 햇살이 뜨거운 어느 골목길 한쪽에는 과일 스탠드가 있었다. 그 앞을 지나갈때 뜨거운 과일 냄새가 훅 끼쳤는데 오랫만에 느끼는 <과일향>이라 머릿속에 저장했다. 걷는데 날이 하도 더워 회사 채팅창에다 날씨가 이게 뭐냐 6월 아닌 8월이다 쯧쯧하다보니 센터에 도착. 지하 리셉션으로 내려갔더니 그제서야 잊혀졌던 기억이 발굴됐다. 정확히 6년전 여름에 여기서 갑상선 결절 biopsy를 하러 왔었던 나. 졸업학기에 무심코 목덜미를 만지다 동글동글한 풍선같은게 만져져서 내원했다가 크기가 커서 결국 바이옵시까지 하게 됐었지. 생각해보니 그땐 ivf를 하기에도 이런저런 가능성이 훨씬 많았었겠다. 지금 내가 돌아가고 싶은 30대 중후반을 그때의 나는 살고있었네. 허나 그때 나는 무언가에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 목에 찌르는 바이옵시란 것도 무서웠고 혹시 큰 병일까 무서웠고. 옆에 아무도 없이 혼자 살았던 시간이 축적된 끝에 마치 말라붙은 나뭇가지처럼 단단하게 생존본능만 남았었던 나. 여기 혼자 와서 무서운 티조차 내지 않고 베드에 올라가 죽은 사람처럼 힘을 빼고 누워있다가 모범적으로 검사를 마치고 돌아갔던 나. 되게 멘탈 박살난 상태로 챔피언같았던 나.

수납에서 코페이 300불 아니고 60불 나올거래서 기뻐하며 사인을 하고 검사실로 이름불려 들어갔다. HSG는 사실 모든 난임시술 중에 가장 아프기로 명성이 자자한 검사라 의사가 이거 처방했을때 사실 아씨 망했다 싶었었다. 하지만 지난 봄 HSN에서 양쪽 나팔관이 다 막혀있다는 소견을 받고 몸보단 마음이 더 훅훅 아팠던지라.. 고통을 참고서라도 진실을 꼭 알아내고 싶기는 했다. HSG를 하고 자연임신 확률이 올라간다는 연구결과가 있기도 하고. 또ㅡ 사실 한국에서 했던 첫번째 HSG가 나는 전혀 아프지 않았어서 이번에도 아마 괜찮지 않을까 예상하긴 했다. (그래놓고 아침에 타이레놀 extra strength로 두개 먹고 준비는 단단히 함 우하하.. ) 암튼 탈의하고 베드에 올라갔는데 이 수술실 베드는 정말 언제 올라가도 현타가 온다. 소독된 공간 안엔 아무도 없고, 시술과 고통과 그것을 당하는 나의 몸만 있는 시간. 거기 누워서 천장을 보고 있는데 문득 이거 끝나고 한시간 후에 회사 미팅에 들어가야 한다는 – 들어가 있을거라는 – 사실이 이상한 안도감을 주었다. 일어날 것이 확실한 일상의 이벤트.. 미래완료 시점이 주는 안전감이라고 하자. 곧바로 PA가 들어와 시술을 시작했는데 카테터를 넣는 순간은 역시 좀 불편하긴 했지만 이젠 이것도 한두번 해본게 아니라 괜찮았고, 그 이후의 시술도 별로 아프지 않았다!! (yay) 중간에 약간 pinch처럼 한번 자궁속을 쿡 찌르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건 예전에 국소마취하고 난자채취할때의 느낌과 거의 똑같아서 신기했다. 검사는 5분도 훨씬 더 안돼서 끝난 느낌이었고 PA가 즉석에서 결과를 보여줬는데 양쪽 나팔관이 다 정상으로 뚫려있다고 함…?? 필름을 같이 봤는데 정말 조영제 통과한 길이 양쪽으로 하얗게 보였다. 왜 결과가 서로 이렇게 다를 수 있냐고 하니까, HSN을 할때 muscle spasm이 일어나면 나팔관이 막힌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만약 한번이라도 뚫려있다는 결과가 나오면 그건 뚫린게 100% 맞다고 한다. 그래서.. 검사도 안아팠던데다 기대도 안한 좋은 소식까지 듣고 되게 기뻤다는 얘기.. 며칠 후에 정식 검사지를 받았는데 나팔관, 자궁 등등 다 그냥 정상이라고 해서 오랫만에 희망을 느꼈다.

p.s 근데 언제부터 뚫려있었던 걸까. 2022년에 한쪽이 막혔다는 검사를 받고 내 몸 한쪽이 불량인 것처럼 인식하고 살았는데 말이야. 3월에 양쪽이 막혀있다는 소견을 받고서는 내가 이제 완벽하게 차폐된 피임머신이 됐구나 싶어서 한동안 기분이 나락이었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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